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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공감] 누가 백성을 ‘역적’으로, 시민을 ‘폭도’로 부를 수 있는가

2017. 05.19. 11:17:48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종영한 MBC 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이하 ‘역적’)의 인상적인 면은, 여느 이야기들처럼 홍길동(윤상균)에게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버지인 아모개(김상중)로부터 시작되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계와 이를 만들어가기 위해 길동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 모두 ‘역적’의 주인공이다.

‘역적’(연출 김진만 등, 극본 황진영)의 홍길동은 우리가 익히 알던 ‘홍길동전’의 모습과 좀 다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던 서자도 아니고, 비상한 머리로 여러 도술을 익힌 것도 아니며 아내를 여럿 얻지도 않았다. 공통점이 있다면 아기장수라 불릴 만큼 범상치 않은 힘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천민이라는 신분적 제약을 받았다는 것뿐이다.

때는 연산군이 통치하던 시절, 똑같은 사람임에도 신분의 높고 낮음을 이유로 누구는 사람 이상의 대접을 받고 누구는 그 이하의 대접을 받는다. 조선이란 나라 자체가 신분제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올바른 이상과 올바른 가치를 가진 통치자 아래에선 같은 제도도 다르게 사용되는 법, 희대의 폭군으로 일컬어지는 연산군의 재임기간이었기에 백성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더 악독하고 악랄했다.

길동의 아버지 아모개가 그리는 세계가 처음부터 컸던 건 아니다. 배포 있고 리더십이 있었을 따름, 주어진 환경에 그럭저럭 순응하며 살아가던 보통의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러다 예기치 못한 비범한 아들의 탄생, 부조리한 상황에 목숨을 잃은 아내, 일련의 사건들로 당연하다 어쩔 수 없다 여겼던 기존의 세계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그 사이로 본 것은 다름 아닌, 신분이 무엇이든 금수저든 흙수저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세계다.

자연스레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 아모개의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덕분에 아직 흐릿했던 그의 세계관은 더욱 선명해지고 두터워져 홍길동의 삶에서 완성된다. 이는 홍길동이 백성의 마음을 훔치고 백성으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꿈꾸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 하겠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 세계인가. 사회적 위치나 신분에 갇혀 자신의 삶은 원래부터 없는 듯 잃어가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마음 시원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으리라.

사실 이러한 면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눈치 챘겠지만,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 상당히 비슷하다 느낀 까닭이다. 여전히 충격으로 남아 있는 비선실세의 존재, 무능력했던 대통령, 날이 갈수록 비틀리는 사회구조로 생겨난 새로운 신분제도(갑과 을, 금수저와 흙수저 등), 그 안에서 끝도 없이 메말라가는 가련한 민생들, 그러나 그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탄핵과 정권교체. 한 가지 다른 점을 찾자면 무기 대신 촛불을 들었다는 것 정도일까.

누가 백성을 역적으로, 시민을 폭도로 부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상당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나라의 주인이 이들인데,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다면 삶이 삶답지 못하다면 이들은 언제든 더 좋은 세상을 위해 판을 재정비할 권리, 권리를 넘어선 의무가 있다. 그래서 더욱 요구되는 것이 현 세계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우리의 살아있는 시선이다. 아모개의 시선으로 홍길동을 비롯한 백성들이 좀 더 나은 세계를 맞이할 수 있었듯,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세계 또한 37년 전 부당한 국가권력과 마주했던 광주 시민들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시선값, 목숨값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 날 백성들이 당신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요, 허나 잊지 마시오, 우리가 지켜볼 테니”

반정을 결단한 조정의 대신들은 홍길동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홍길동은 곧 백성의 민심을 대표하는 인물이니, 그가 함께 하는 것만으로 반정의 명분이 완성될 테니까. 이런 의도를 정확히 간파한 홍길동은 백성의 뜻도 동일하여 도와는 주겠지만 ‘우리’가 지켜볼 것을 잊지 말라고 한다. 나라의 주인은 조정의 대신들이나 임금이 아닌, 백성들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 ‘주인 된 우리’가 ‘살아있는 시선’으로, 제대로 지켜보지 않는다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살아있는 시선’은 ‘올바른 세계관’을 갖추었을 때 가능하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대한민국이 새로운 대한민국입니다. 상식과 정의 앞에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숭고한 5.18정신은 현실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가치로 완성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사 중 일부다. 이것이야말로 ‘주인 된 우리’가 갖추어야 할 올바른 세계관으로 촛불집회까지 이어진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 영향력이자 드라마 ‘역적’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 제공=후너스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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